1993년, 부산 구암. 이곳은 작은 조직들이 엮여 있는 거친 뒷골목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희수는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정우, 김갑수, 최무성, 이홍내, 윤지혜 등이 출연한 영화 뜨거운 피는 한 남자가 조직의 논리 속에서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그려낸다. 부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강렬한 분위기와 함께 누아르 특유의 거친 감성을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조직의 논리, 그리고 벗어나고 싶은 남자
부산 변두리 구암에서 희수(정우)는 오랜 세월 조직의 보스 손 영감(김갑수)을 모시며 충성을 다해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큰돈을 벌기는커녕 계속해서 거친 싸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 밀수꾼 용강(최무성)이 희수가 관리하는 호텔을 습격한다. 희수는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호텔이 마약 공장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 영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 사업을 조직에서 직접 하자고 하지만, 손 영감은 마약 사업이 조직을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며 거절한다.
희수는 점점 더 답답해진다. 조직을 떠나 새로운 길을 가고 싶지만,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변화를 원하는 자,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구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부산의 또 다른 세력인 영도파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희수는 이 조직과 엮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새 그들의 제안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한편, 희수는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결국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임을 깨닫는다. 어느 날,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오랜 친구 철진(지승현)을 만나게 되면서 희수의 인생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철진과의 재회는 단순한 옛 친구와의 만남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된 감정과 새로운 갈등이 얽혀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 그리고 깊어지는 갈등
희수의 삶에 중요한 변화가 찾아온다. 그의 연인 인숙(윤지혜)의 아들 아미(이홍내)가 출소하며 다시 희수의 곁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따랐던 아미는 희수가 조직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존재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조직 간의 갈등이 격해지는 가운데, 용강의 부하들이 희수가 있는 곳을 습격하고 그의 부하들이 잔혹하게 희생된다.
희수는 결국 용강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비밀 자금이 숨겨진 금고를 빼앗기 위해 무자비한 작전을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희수는 조직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한다.
피로 얼룩진 선택,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길
희수는 결국 손 영감에게 조직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손 영감은 이해한다는 듯 보내주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희수가 새롭게 시작한 오락실 사업이 성공하자 영도파가 개입을 시도하며 조직 간의 갈등이 다시 폭발한다. 희수는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싸울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그는 절친한 친구였던 철진과도 더 이상 같은 길을 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싸움, 그리고 모든 것을 삼켜버린 운명
희수는 아미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영도파와 엮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아미의 여자친구가 영도파 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하자, 아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간다. 결국 그는 싸움 끝에 목숨을 잃게 되고, 희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아미의 죽음은 희수와 철진 사이의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겨누게 된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국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희수는 결국 철진을 죽이며 조직 내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 손 영감이 영도파에게 습격당해 병원에 입원하자 희수는 그를 찾아가 베개로 얼굴을 눌러 조직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구암을 차지한 그는 이제 더 높은 곳에 올랐지만, 그곳에는 그를 위해 웃어줄 사람도, 함께할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백사장 앞에서 차에서 내린 희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손 영감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다.
"맨 밑이든 맨 위든, 미래는 두 곳밖에 없다."
결국 희수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지만, 그곳은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홀로 백사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