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만든 역사 드라마입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나가사키 인근 하시마섬(일명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삶과 그들의 절망과 탈출을 다루며,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닌 기억과 저항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잊혀져가던 진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은폐되었던 조선인 강제노역의 실상. 〈군함도〉는 이 민감한 주제를 무겁고도 대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며, 지금도 재조명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2025년 현재, OTT에서 다시 이 영화를 만나는 관객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군함도, 이름 없는 이들의 감옥
영화는 1945년 일본 패망 직전, 조선인들이 ‘고수익을 보장하는 근로’라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이송되면서 시작됩니다. 이강옥(황정민)은 딸 소희(김수안)과 함께 악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하지만, 그곳이 군함도임을 안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그들은 노예에 가까운 탄광 노동에 투입되며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고, 포기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버팁니다. 조직폭력배 출신의 최칠성(소지섭),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 말년(이정현), 그리고 냉철한 독립군 박무영(송중기)은 군함도의 현실을 목격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출구를 찾아갑니다.
박무영의 임무는 군함도에 억류된 인물을 구출하는 것이었지만, 조선인 전체가 섬에서 폭사될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되며 임무는 탈출 작전으로 전환됩니다. 탄광 폭파와 함께 벌어지는 대탈출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인물의 구조 – 이름 없는 저항자들
〈군함도〉의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 속 무수한 ‘익명의 피해자’들을 상징합니다. 이강옥(황정민)은 생존과 보호를 위해 때로는 비굴하게 행동하지만, 딸을 위해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서 관객의 정서를 대변합니다.
박무영(송중기)은 영화적 긴장감을 책임지는 캐릭터로, 전략적이고 냉정한 독립운동가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사람의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며, ‘의무보다 생명’이라는 주제를 드러냅니다. 최칠성(소지섭)은 힘과 거칠음의 상징이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현실을 읽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인물입니다.
말년(이정현)은 위안부 피해자의 서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누구보다 인간적인 의지를 지닌 그녀는 이 영화의 ‘숨겨진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희(김수안)은 침묵 속에 모든 것을 목격하는 존재로, 어른들이 저지른 비극의 미래를 상징합니다.
허구와 진실 사이 – 영화가 그린 역사 해석
〈군함도〉는 허구의 탈출극을 기반으로 합니다. 실제 군함도에서 대규모 탈출 사건이 벌어진 기록은 없지만, 영화는 그 지점에서 ‘역사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합니다. 영화적 과장과 허구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관객에게 고통의 실체를 체감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었다면, 그 또한 중요한 기억의 방식입니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의 처참한 삶을 고발하는 동시에,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욕망과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강조합니다. 단순한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살아남고자 했던 사람들’로서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기억의 윤리를 다루는 영화가 지닌 힘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드는 영화
〈군함도〉는 논쟁의 여지도 있고, 영화적 허구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때 존재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왔던, 혹은 아예 배우지 못했던 역사 한 장면을 살결 가까이 끌어다 놓는 영화. 그것이 〈군함도〉입니다.
잊혀서는 안 될 이야기. 〈군함도〉는 그 서사를 거칠고 격렬하게, 때로는 감정적으로 완성했습니다. 2025년의 지금, 다시 이 영화를 꺼내 든다면, 단지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