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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를 넘어, 시대를 말하다 – 영화 〈흥부〉 리뷰

by pocket100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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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포스터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2018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깊은 정치적 의미와 창작자의 윤리를 되짚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민담 속 캐릭터들을 정치적 은유로 재해석하고, 조선 후기의 격변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사회의 구조와 문제의식을 고찰하게 만듭니다.

감독 조근현은 전통적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존재가 가진 영향력을 시대의 프레임 안에 녹여냈고, 정우, 김주혁, 정해인, 천우희 등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서사의 무게감을 훌륭히 끌어올렸습니다. 영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글과 말’이 가진 힘,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해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형을 찾다, 글을 쓰다

작가 흥부(정우)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는 글솜씨 하나로 웃음을 주고 감동을 전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풍요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떠돌고 있는 떠돌이 작가에 가깝습니다.

그러던 중 흥부는 우연히 권력자 조항리(정진영)의 도움을 받아 그의 저택에 머물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두 형제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가진 맏형 이제(김주혁)와, 권력을 향한 집착과 야망으로 가득한 동생 이석(정해인)입니다. 이 두 형제의 삶과 가치관은 극명하게 대립되며, 흥부는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창작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쓰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흥부전’입니다. 하지만 이 흥부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박씨와 제비의 이야기보다는, 정의롭고 약자를 위하는 흥부와 탐욕스러운 놀부의 대결을 통해 현실의 불의를 고발하는 정치적 우화로 구성됩니다. 백성들은 그 이야기에서 현실을 읽고, 민심은 들끓기 시작합니다.

흥부전은 곧 민중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며, 정치적 파장을 일으킵니다. 민중은 이야기에 열광하지만, 권력자들은 그 이야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민심을 얻은 이제는 정치적으로 점점 고립되어 가고, 결국 음모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제의 죽음은 흥부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그는 자신이 쓴 이야기로 인해 좋은 지도자가 죽음을 맞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형을 찾는 여정을 멈춘 채 다시 붓을 듭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재미나 풍자만이 아닌, 진짜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현실을 향한 기록’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이로써 흥부는 이야기꾼에서 시대를 기록하는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흥부’의 의미를 다시 묻다

영화는 ‘흥부’라는 인물의 도덕성과 착한 성격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대신 흥부를 ‘시대의 민심을 담는 그릇이자, 현실을 직시하는 관찰자’로 재탄생시킵니다. 전래동화 속 흥부는 주어진 운명 안에서 복을 받는 인물이지만, 영화 속 흥부는 능동적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입니다.

놀부 또한 단순히 못된 형이 아닙니다. 이석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권력자의 얼굴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는 백성을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흥부의 글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입체적인 해석은 영화 전체를 ‘동화’가 아닌 ‘정치우화’로 탈바꿈시킵니다.

이제는 그 중간에 선 인물입니다. 그는 실제로 이상적 정치인의 상을 갖추었지만, 현실 정치의 흐름 속에서 끝내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 인물입니다. 김주혁 배우는 이 인물을 통해 지도자가 가져야 할 진심, 포용력, 그리고 고독함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 냈고, 그의 죽음은 영화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로 기능합니다.

흥부가 이야기를 쓰고 있는장면 지금 쓰는 이야기가 어떤일을 불러올지 모르고......

‘이야기’는 왜 위험한가

〈흥부〉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묻습니다. 글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때로는 체제를 흔들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며, 권력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백성들에게는 흥부전이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였고, 권력자들에게는 체제를 위협하는 선동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책, 영화, 콘텐츠 하나가 대중의 여론을 바꾸고,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시대. 그렇기에 창작자는 글이 가진 영향력만큼이나 그에 따른 윤리적 책임도 짊어져야 합니다.

영화 속 흥부는 글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뒤, 더 이상 이야기꾼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는 창작자로서의 성장통을 겪고, 글이 가져야 할 방향성과 의미를 자각합니다. 결국 ‘흥부전’이라는 한 편의 이야기로 끝났던 그는, 이제부터 진짜 현실을 향한 ‘기록자’로 거듭납니다.

2025년 오늘의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

이 영화가 2025년에도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만큼 진실은 더 쉽게 왜곡되고, 말과 글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작가 흥부는 글을 무기 삼아 세상을 바꾸려 했고, 결국 그 무기의 날카로움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현대의 모든 표현자들이 고민해야 할 주제이기도 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어떤 파장을 낳을 수 있을까? 그 책임을 질 준비는 되어 있는가?

또한 이 영화는 리더십의 의미도 함께 묻습니다. 정의롭지만 힘이 없는 이상주의자 이제, 똑똑하지만 탐욕에 찌든 실리주의자 이석.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깨달아가는 이야기꾼 흥부. 그 세 인물의 관계는 오늘날 정치, 사회, 언론의 구조를 그대로 투영한 메타포로 읽힙니다.

시대는 흘러도, 이야기는 남는다

흥부는 글로 민심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며,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창작의 윤리’와 ‘리더의 조건’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전래동화라는 익숙한 틀을 통해 새롭고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을 보여준 이 영화는, 지금 다시 보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울림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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